내가 TERF를 싫어하는 이유

아무리 인권에 관심이 많고 인권 운동을 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차별을 동등하게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신경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성 인권에 더 관심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장애인 인권에 더 관심이 있고, 어떤 사람은 노동 인권에 더 관심이 있겠죠. 당연한 것입니다. 어떻게 모든 분야의 인권 의제에 동일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겠어요?


TERF들은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맞습니다. 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많고 다른 인권 문제에 관심이 낮거나 없는 것은 잘못되었다 할 수 없죠. 하지만, TERF들이 하는 행동은 단순히 자신의 파이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의 파이를 위해 다른 약자들의 인권을 빼앗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들은 퀴어, 빈곤층, 장애인 등 여성 인권이 아닌 인권 의제에 관심을 갖는 다른 페미니스트들을 쓰까페미라고 부르며 지금 당장 급한 여성 인권보다 성소수자, 저소득층, 장애인 등의 인권을 먼저 챙긴다며 비난합니다.  또한 여성들의 절박한 투쟁을 ‘여러 인권 이슈 중 하나’ 정도로 축소한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죠.


이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권은 나눠 먹으면 한 사람의 몫이 줄어드는 파이가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다양한 사상과 갈래가 있지만,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긴 기득권을 무너트리기 위한 운동이라고 정의한다면 대체로 동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의 파이를 빼앗으려 하는 TERF들은 기존의 기득권층과 뭐가 다른 걸까요?

“여자인데 뭐가 기득권이냐”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모든 부분에서 기득권인 사람, 반대로 모든 부분에서 소수자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에서 배달 알바를 하는 저소득층 일용직 남성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이 사람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비장애인 남성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소득층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득권이면서 동시에 소수자입니다.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범주는 단일하지 않으며 다양한 측면이 상호 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거죠.

즉, 한 사람에게 작용하는 차별은 다양한 차별이 세트 효과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여성의 경우 여성이라서 받는 차별과 장애인이라서 받는 차별이 개별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두 차별은 서로 세트 효과를 이뤄 더 큰 차별을 만들어내죠.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퀴어, 빈곤층, 장애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인권은 나눠 먹는다고 나의 몫이 줄어드는 파이가 아닙니다. 혼자라면 힘들겠지만, 연대하고 뭉쳐서 기득권을 무너트리면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도 인권이라는 파이는 충분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